일상영성과 일

"주께 하듯 하라", 갑을 위한, 을을 이용하기 위한 윤리인가?

푸른메아리1 2013. 6. 28. 01:46

#직업과소명, 그리고 미션얼 라이프(Life as Mission)_

<"주께 하듯 하라", 갑을 위한, 을을 이용하기 위한 윤리인가?>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로새서 3:22-24)

일터의 영성을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하게 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하나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것은 바로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이다.

일터에서 우리는 육신의 상전(고용인) 앞에서 눈가림만 하는 자세로 일할 수도 있고, 고용인이나 감독관이 없이도 우리의 진정한 보스인 주님 앞에서 일한다는 자세로 그야말로 "주께 하듯" 일할 수도 있다. 아무도 보지 않고, 감독하지 않아도 이렇게 "주께 하듯" 일하는 것은 먼저 일터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보내신 소명의 자리, 보냄받은 사역지라는 의식 속에서 가능하다. 말씀에서는 상전 앞에서 실적을 세우고 눈에 띠게 일함으로써 좋은 인사고가를 받고, 표창을 받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성실한 마음으로 일할 때 그 상을 주님으로부터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요, 주님이 진정한 상전이고 고용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을 다하라는 윤리적 명령으로서 마치 고용인들을 위한 말씀인 것처럼 보인다.

"'을'에게 명한다. 눈가림하듯 일하지 않고 성실하게, 마치 주님께 하듯 일하라."

이것은 '갑'의 이익에 정확히 복무하는 것이고, 이렇게 성실히 일하는 그리스도인 성도들은 '갑'과 동료들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한번 성실히 일하는 것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이 되면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어서 심지어 애매한 업무들을 떠안길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일터에서 "주께 하듯" 행하는 것은 매우 바보스러운 일이고, 자신을 소모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말씀은 "주께 하듯"하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보냄받은 일터에서 성도가 취할 자세로 이 외의 다른 어떤 것이 있을까? 일터를 소명의 자리로 여기는 성도가 눈가림하듯 일하거나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주께 하듯" 모든 일을 하는 것이 그저 착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아닌 혁명적인 삶의 태도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주께 하듯 하라"는 명령에 따라 행하는 것이 그저 현 체제에 순응하면서 소시민적인 삶에 만족하고 자기 일에 성실하기만 하면 된다는 직업윤리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를 일터로 보내시는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주님이 여신 하나님 나라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우리가 서 있는 땅과 생활 영역들이 주님의 통치를 인정하도록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그래서 성도들은 "주께 하듯" 일하며 자신의 일터에서 불의에 맞서고 제도를 개선하며 사람들을 돌보고 작업 환경을 바꾸어 가는 일에 힘쓴다.

우리는 일터에서 살아내어야 한다. "주께 하듯 하라"라는 명령은 순종적이고 착한 그리스도인 노동자로 살라는 것이 아니다.
주께 하듯 일하며,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전해야 하리라.
왜?
우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