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QT _ 느 1:1-11 <느헤미야의 회개와 간구-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기도하는 삶의 힘>
비록 이방 왕을 섬기고 있는 처지였지만 느헤미야는 안정되고 인정받는 자리에서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자신의 자리, 자신의 안정을 추구하며 만족하는 삶을 살기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하나님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며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이는 그의 지속적인 기도생활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방의 문화에 둘러싸인 곳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예루살렘의 파괴와 하나님 백성들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둔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이를 자신과 자신의 백성의 문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문제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기도는 그 백성이 처한 삶의 정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고 깨어 있게 하는 힘이다. 편안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는 때에는 둔감해지기 쉽고, 먹고 살기에 바쁘고 미래가 불투명하여 분투하고 있을 때에는 여유가 없으며, 자기와 자기 가족의 일만 간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상황과 그 기도의 모습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인 나와 공동체가 참으로 기도의 삶을 회복해야 함을 깨닫는다.
나아가 느헤미야의 기도에서 몇 가지를 배우게 된다. 하나는 그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예루살렘에 닥친 고난이 하나님 백성들의 죄와 불순종에 따른 심판이었음을 알고 회개의 기도를 드리되 그 죄와 불순종이 다른 누군가의 죄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죄와 불순종임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느헤미야는 기도 가운데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방법을 찾았고 그것이 자신의 안정된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해도 순종하려고 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이 사용될 수 있음을 인정하며 기도했다는 점이다.
기도하는 자리에서 흔히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라고 간구하고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정작 바로 그 죄와 불순종이 자신의 문제임을 고백하며 회개하지 않는 교만함이 자주 드러난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특히 한국 교회의 문제를 놓고, 그 심각한 파괴와 쇠락의 현상을 목도하고 기도할 때에 다른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로부터 회개해야 함을 본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들 속에서 애통하며 중보하는 그 시간에 바로 나를 들어 사용하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도하는 자세를 회복해야 함을 느낀다. 기도하면서도 헌신은 배제하려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온전히 기도하고 있는가? 온전히 중보하고 있는가? 깨어 있는가? 삶의 정황 속에서 나 자신에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 보냄받은 사명으로 살기 위해서는 기도의 삶이 필요하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붙들고 천착하고 있는 나 자신의 안전을 위한 기도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안에 나를 드릴 수 있는 그런 기도의 삶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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