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영성, 보냄 받은 공동체 이야기

‪#‎시심QT‬ _ 사람에게 결탁된 종교(느 13:4-14)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 작업을 완수하고 이스라엘에는 부흥의 역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소되지 않은 구악이 존재하고 있었다. 엘리아십 제사장이 도비야와의 친분으로 하나님의 전 안에 도비야를 위한 방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 방은 원래 하나님의 전에서 사용되는 용품들과 십일조로 모은 것들을 보관하는 방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아 레위인들은 생계 문제 때문에 성전을 떠난 상태였다. 
하나님의 전이 더럽혀져 있고, 온전히 세워져 있지 못한 현실을 본 느헤미야는 당장 도비야의 방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를 원상복구했으며, 레위인들에 대해서도 율법에서 명한 대로 처우하도록 조치했다. 

도비야는 느헤이먀가 성벽 재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를 방해하려고 했던 대적이었다. 아마도 무너진 예루살렘성 인근에서 실세권력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인물이었으리라. 그런 도비야와 당시 이스라엘의 제사장간의 친분은 사사로운 친분일 수도 있고 정치적 협력 관계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종교 권력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보다 사람에게 의지하여, 사람에게 결탁되어 활로를 모색하는 모습이 된다. 설령 사사로운 친분이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전을 제사장 임의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교회의 재산을 사사로이 전용하거나 처분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정치인이나 지역 유지, 권력자, 재산가들과의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가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을 불러 교회 앞에 인사를 시키고 믿음 좋은 사람으로 소개를 해 주고, 심지어 지지를 종용하는 일까지 있다. 

사람에게 결탁된 종교는 타락한 종교이다.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교회, 사사로이 세상과 손잡지 않고 교회로서의 제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는 교회로 회복되도록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자. 그리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엘리아십류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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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느 12:44-47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와 제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 직후 하나님께 이를 봉헌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이스라엘은 느헤미야의 지도 하에 지속적인 예배와 찬양의 사역을 위해 제도를 구축한다. 곧 율법에 따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돌릴 백성들의 십일조 제도를 회복하고 이들이 온전히 하나님께 제사하고 결례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특징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삶이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일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대로 제도를 구축하고 지속성을 담보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예배와 찬송의 사역이라는 것은 모든 하나님 백성들의 사명이요 삶의 양식이기는 하지만 이 사역을 위해 특별히 세워진 사람들을 돕고 이들이 온전히 사역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토요일에 하늘가족교회의 조직과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작은 교회이고 몇 가정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예배와 섬김의 사역을 해 왔다. 보다 더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제도를 구축하고 조직을 형성해 가는 일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이 아침에 묵상하게 된다. 물론 그러한 제도화가 구조 자체를 구축하고 자리를 만드는 일이 되어서는 안되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며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한 것이어야 함은 분명한 일이다. 토요일 모임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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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즐거워하는 예루살렘 (느 12:31-43) 

하나님께서 기쁨을 충만하게 하시니 예루살렘의 하나님 백성들은 마음껏 찬송하고 경배하며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한다.
전쟁과 살육, 예루살렘의 파괴와 삶의 터전을 상실한 아픔, 절망과 인고의 세월이 지나고 정말 아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예루살렘의 회복을 경험한 이들은 아마도 벅찬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알았을 것이다. 그 숱한 세월들 속에서 늘 함께하신 하나님을, 대적들의 위협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 느헤미야를 보내주시고 마침내 회복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을...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도, 희망을 꿈꿀 수조차 없는 현실이 포위하고 있어도, 심각하게 무너져서 회복이 요원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진행하시고 무한한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진행하시는 그 역사에 동참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오늘도 새 소망을 품을 수 있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기쁨 안에 충만히 거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여, 이 아침에 기쁨의 씨앗을 내 중심에 심어주시고 새 소망과 용기를 주시는 당신을 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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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느 9:27-38 <사람이 따르면 삶을 얻는 주의 계명에 순종하라>


이제 느헤미야의 이스라엘 공동체는 역사상 나타난 조상들의 죄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세운다.

역사상 반복된 죄의 양상은 주의 계명과 율법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오늘 말씀은 주의 계명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이 따르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개역개정)", "삶의 지침이 될 바로 그 말씀(메시지)".

하나님의 말씀은 실로 사람에게 삶을 주는 것이며, 삶의 지침이 되는 것이다. 

이를 탐구하고 묵상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잊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도를 따르는 삶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제대로 살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말씀을 좀 따르는가 하다가 형편이 좀 나아지고 풍족해지며 안락해지면 곧 말씀을 떠나고 불순종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평안하고 안락하며 삶의 치열함이 없어질 때 우리는 말씀을 더 많이 묵상하고 그에 따르기보다는 더 재미 있고 흥미 있어 보이는 이야기들을 찾아나서고, 투박하고 우직하게 말씀에 헌신하기 보다는 더 세련된 신앙의 양식을 추구하며, 세상의 우상을 향하여 내달린다. 

말씀에서 떠나 자꾸만 다른 것을 추구하고 채워넣으려는 나의 욕망이 오늘 말씀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다시 말씀에 헌신하자. 그리고 그 헌신은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하리라. 

방학 기간이다. 말씀에 헌신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단순한 삶의 양식과 습관을 만들어 가는 시간들이 되도록 내 삶을 돌아보고 재정비하자. 

그리고 손을 뻗어 열어보기만 하면 명백히 드러나는 하나님의 공의와 그 뜻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사람의 지혜와 지식과 권력과 권위와 돈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한 지체된 자로서 기도의 책임을 방기하지 말자. 



Posted by 푸른메아리1

#시심QT _ 느 9:5-15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기억하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친히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분이시며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사 그 구원의 계획을 실행해 가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참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백성이 애굽에서 고난 당하실 때 크신 손을 펴시사 그들을 구출하시고 대적의 손에서 건지셨으며 이를 위해 홍해를 가르시고 그 백성을 친히 이끄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분이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그 백성을 먹이시고 그 백성이 목마를 때에는 물을 주시는 분이시다. "구원자 하나님, 보호자 하나님, 인도자 하나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당신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백성에게 참 율법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대로 살도록 촉구하시고 그 백성이 살아갈 법도를 알려주신 분이시다. "왕이신 하나님, 당신의 나라를 베풀어 주시고 인간이 살아갈 바를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느헤미야서에서는 하나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영적 갱신의 시간을 가지면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행하는지 기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않는 백성은 교만해지고 방자해진다. 죄에 빠지고 현실에 절망하며 현실에 타협하기 마련이다. 포로로 붙잡혀 갔다가 다시 돌아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하나님의 백성들... 하지만 여전히 타국의 지배를 받고 있고, 성벽은 완성되었지만 여전히 삶은 팍팍하고 황폐한 현실 속에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히 살아내기 위하여 함께 '기억'하는 일에 헌신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기억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참된 힘이요, 하나님 백성들의 삶의 방식이다.


38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감사하고 감사한 오늘의 삶이지만 갑갑한 현실도 도처에서 나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내 삶에 행하신 일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돌이켜보면 놀라운 능력으로 오늘 이 곳까지 나를 보호하시고 이끌어 오신 그분의 은혜와 그분의 계획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 앞에 선 공동체와 함께 '기억'의 영성으로 오늘을 살아야 함을 느낀다. 하늘가족공동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 일상생활사역연구소와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들, 그리고 한국 교회와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 기억의 과정 속에서 참된 회개와 감사와 오늘의 참된 행동이 나타날 것이다.

Posted by 푸른메아리1

#시심QT _ 느 9:1-5 <하나님 백성과 죄와의 싸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여 거대한 회개의 공동체가 된 이야기가 오늘 말씀에 나온다. 그들은 다시 함께 모여 하나님의 율법책을 들으며 회개하고 철저히 죄와 싸우면서 회복을 위한 공동체적 행동을 취한다.


하나님 백성이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죄와의 싸움이 필수적이다. 죄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며 공동체의 파멸을 이끈다. 회개의 싸움, 보이지 않는 전투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관계를 청산하고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를 도모하며 죄에서 돌이켜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의 삶에서 죄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 있는지 돌아본다. 내재된 죄, 반복적인 죄, 그리고 명백히 인식하면서도 돌이키지 않는 나의 모습에서 죄와의 싸움을 포기하고 은혜만 말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공동체는 공동체 안에서 보이지 않는 죄에 직면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죄의 문제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꿈틀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돌이켜 본다. 전투에서 전쟁에 이르기까지 죄와의 싸움은 우리 삶과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 늘 존재한다. 다만 말씀을 통해 열린 눈으로 이 싸움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래서 더욱 치열하게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우리를 조명하도록 해야 하겠다. 이스라엘이 말씀 앞에 서서 단순히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회개했던 것처럼...

Posted by 푸른메아리1

#시심QT _ 느 8:7-12. <말씀으로 회복되는 공동체>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지도 하에 말씀 앞에 선 이스라엘 회중들은 레위인들이 풀어주는 말씀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말씀을 밝히 알게 되자 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해 왔는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여기에서 멈추지 않도록 지혜롭게 권면한다. 말씀 앞에서 서서 회개하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참된 회복의 메시지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돕는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여러분의 힘입니다"라고 말하며 백성들이 하나님으로 인한 참된 회복을 기뻐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제 백성들은 음식을 나누며 축제의 장으로 나아온다. 실로 말씀으로 회복되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말씀이 공동체에서 진정으로 선포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말씀을 온전히 받는 공동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참된 회개와 회복과 구원의 즐거움이 넘쳐나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가? 말씀을 전하는 이들도 진정으로 말씀에 붙들려 있어서 그 말씀의 진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듣는 이들도 가난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말씀에 의한 공동체의 회복이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정 가운데 성령님의 강한 역사하심이 있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말씀 앞에 서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힘"을 누리길 원한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기도하며 행하고, 신실하게 붙들어야 할 삶의 태도이다. 그리고 소망한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말씀으로 인한 참 회개와 즐거움이 넘쳐나기를... 말씀을 전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 이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Posted by 푸른메아리1

#시심QT _ 느 8:1-6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하나님의 백성>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이스라엘. 그리고 정착 작업의 완료..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찾게 된다.

곧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만이 그들이 살아야 할 방향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은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달라고 요청하게 되고 온 회중이 모여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놀라운 장면이고, 영광스러운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그 말씀을 온전히 듣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너진 삶을 일으키고, 참된 회복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은 바로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 시작된다. 이것이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말씀 앞에서 반응해야 할 이유이다.


이 아침에 같은 말씀으로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아멘'하며 반응하는 이들이 생각난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사는 하나님 백성들의 고백들로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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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느 6:10-14.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믿음과 분별력으로 살기>


느헤미야에 대한 위협은 지속적이고 교묘하게 이어진다. 이번에는 예언자를 매수하여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성전을 범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느헤미야에 대한 평판을 떨어뜨리려는 술수가 나타난다. 느헤미야는 온갖 권모술수로 그야말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어서 그 행보가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느헤미야는 이런 상황 속에서 깨어 있는 분별력을 발휘한다. 거짓 예언자를 분별해 내고 계략의 전모를 분별해 낸다. 그리고 그의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믿음과 분별력으로 상황를 헤쳐간다. 


온갖 권모술수와 계산과 위협들이 산재한 세상이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위협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지혜를 구한다. 믿음을 구하며 도우심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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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느 6:1-9_ 사역자에 대한 악의 위협

'사역자'라는 말이 소위 종교적 영역에서 전임으로 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일상의 영역, 일터와 삶터로 보냄받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도 사역자이다. 

누구든지 보냄받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사역자들이 뜻을 세우고 일을 추진해 나갈 때에는 악의 위협을 받기 마련이다. 

오늘 말씀에서 느헤미야는 산발랏 등에 의한 매우 구체적인 위협을 받게 된다. 느헤이먀를 따로 불러내어 죽이려는 계획을 수차례 시도하고, 급기야 성벽을 완성하여 느헤미야가 왕이 되고자 하며 페르시아에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이 위협의 특징은 지속적이고 점증하는 위협이라는 점에서 느헤미야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느헤이먀는 대적의 계략을 간파하고 단호하게 물리치며 소문에 동요되지 않는 것처럼 말씀에 묘사되고 있지만, 그가 지속적으로 겪었을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지는 능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느헤미야는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힘을 주시도록' 기도하며 구체적인 위협들을 헤쳐나간다.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한다고 해서 위협이나 악의 방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위협이나 방해는 지속적이고 치명적이며 점차 강화될 수 있다. 이 사실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힘 주시도록 구하며 그 상황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위협 앞에서 자주 쓰러지고 마는 나의 모습, 악의 시험 앞에서 쉽게 무릎꿇는 내 모습을 돌아본다. 그리고 넘어져 있지 않아야 함을 느낀다. 하나님께 다시 한번 힘 주시도록, 내 손에 힘을 주시도록 의지하자. 그리고 위협 가운데 살며, 운동하며, 보냄받은 곳에서 사역하는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자.

Posted by 푸른메아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