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영성, 보냄 받은 공동체 이야기

#시심QT _ 골로새서 1:1-8 _ 복음으로 인하여 교회가 되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 골로새 교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표현이다. 

이 신실한 형제들로 인하여 바울의 마음은 감사로 넘쳐난다. 

골로새 교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성도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여 그 아름다운 소문이 전파되고 있었다. 

또한 골로새 교인들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었다. 

믿음, 사랑, 소망… 이 아름다운 덕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바울은 바로 복음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골로새 교인들은 그 말씀을 온전히 받들어 그 안에서 자라났던 것이다.

그들은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으며’, 성도들 가운데에서뿐만 아니라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났다.’


골로새 교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충만한 성도들의 공동체, 곧 교회는 복음 안에서 온전히 형성되고 자라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복음 진리를 말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듣고, 깨닫고, 열매를 맺어 자라감에 있어서 나와 우리 교회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인지 돌아보게 된다. 나와 우리 교회가 복음 안에서 온전히 자라가서 성도들의 온전한 공동체로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한편, 바울의 동역자 에바브라에 대한 진술도 마음에 울림을 준다. 그는 골로새 교회를 개척하고 성도들을 가르친 이이다. 그 역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으로 평가되며, 성령 안에서 골로새 교인들의 사랑을 알린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에바브라에 대한 바울의 특별한 신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일꾼’으로 살고 있는가? 나에게 주신 은사로 성도들을 온전히 섬기고 있는가? 신실함이 절실한 시대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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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언약 (창 21:22-34)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2절 중)

아비멜렉의 아브라함에 대한 평가.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 대한 이런 인식에 의해 상호 언약을 맺자고 제안한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고 그 땅의 합법적 우물 사용권을 확인받는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3절)

아비멜렉과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이루어져 간다는 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더디게 느껴지지만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에셀나무를 심은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에셀나무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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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고전 6:12-20 / 몸.


오늘 <시냇가에 심은 나무> 본문은 메시지 성경으로 읽을 때 더 깊은 감동과 놀라움을 안겨준다.


"주님께서 몸으로 여러분을 영화롭게 하시니, 여러분도 자신의 몸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십시오!"(13절 중)


"하나님께서 주님의 몸을 무덤에서 일으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똑같은 부활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몸을 대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여러분의 몸이 주님의 몸과 똑같이 존귀하게 지어졌음을 기억하십시오."(14-15절 중)


"섹스에는 살갗과 살갗의 접촉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섹스는 육체적 사실만큼이나 영적인 비밀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에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려거든, 헌신과 친밀함이 없는 섹스, 우리를 전보다 더 외롭게 하는 섹스, 결코 '한 몸이 될' 수 없는 섹스를 추구하지 마십시오. ... 성적인 죄는 우리 몸의 거룩함을 더럽히는 죄입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사랑을 위해 다른 사람과 '한 몸이 되도록' 지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곳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사신 여러분의 몸을 함부로 굴리면서 제멋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릅니까? ... 그러니 여러분의 몸 안에서, 여러분의 몸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십시오."(16-20절 중)


* 소위 '영'과 '육'을 구분하는 영육이원론은 이 말씀 앞에서 무색해지고 만다. 영적인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몸은 썩어서 없어질 것, 거룩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몸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며, 우리의 몸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하신다. 그런 측면에서 성적인 죄는 거룩의 문제와 결부되고, 몸을 함부로 굴리고 몸의 청지기로 살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몸으로 사는 오늘을 생각해 본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존귀한 몸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수면의 습관에서부터 식습관, 성생활 등등... 돌아보고 새롭게 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몸의 부활, 몸의 거룩함을 말씀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몸으로 사는 오늘에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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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도 _ 몸을 위한 기도


"우리의 몸을 창조하셔서 일하고 먹고 자고 행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몸으로 참된 예배와 찬송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몸이 비록 썩어지고 노쇠하는 것이지만은 우리는 몸 없는 영혼으로 당신 앞에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몸을 입고 사는 사람들인 것을 고백합니다. 몸이 지치고 피곤함으로 인간의 한계와 당신의 무한하심을 묵상합니다. 피곤함으로 인해 우리가 더욱 당신을 의지하며 쉼으로 나아가게 됨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몸이 곤고할 때에는 소생케하는 은혜를 더하여 주소서. 우리도 당신 앞에서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살며 당신이 주신 몸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 성실하겠습니다. 몸으로 먹고 마시고 행동하는 모든 일 가운데 주 안에서 거룩하게 하여 주소서.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몸으로 당신을 섬기는 것이오니 우리의 몸을 위험과 유혹과 질병으로부터 지켜주시옵소서. 몸으로 하는 일상의 모든 활동 가운데 주님께 영광돌려 드리는 모습이 있게 하여 주시고, 주님께서 부르시고 일하라 하실 때 몸으로도 잘 준비되어 있는 참된 청지기와 일꾼이 되게 하여 주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osted by 푸른메아리1

#시심QT _ 고전 3:1-9 _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일꾼일 뿐.


아볼로파, 바울파.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분파를 경계하며 이들 사역자들에 대해 과도하게 의존하고 그들의 권위에 기대려는 성도들을 경계하는 바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계파, 라인, 파벌... 한국 사회의 병폐가 교회 안에서, 기독 공동체 안에서 더욱 증폭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많이 보인다. 꼭 계파를 만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아닌 인간 사역자들을 과도하게 신뢰하고 그에게 의존하며 권위를 부여하려는 정서적 경향은 늘 경계해야 한다.


예수님보다, 보내신 하나님 보다 '우리 목사님', '우리 간사님', '우리 교수님'을 맹종하는 순간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요, 그분의 일꾼이라는 정체성은 이미 부차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다른 계파, 라인, 파벌에 대한 비교와 경쟁, 비난과 근거없는 배제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정한 인간 지도자에 기대려는 내 안의 경향을 경계해야 하겠다. 그리고 내가 오직 하나님의 동역자요, 일꾼일 뿐이라는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자. 갈라지고 분열된 기독 공동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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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고린도전서 2:1-5 _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는 믿음.


보냄받은 현장에서 복음을 나눌 때 우리 자신의 지혜와 지적 언변과 삶에서 내세울만한 요소들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나눌 때 이런 부차적인 것들에 힘을 쓰지 않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만을 단순하고도 분명하게 전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고 이런 단순한 메시지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믿었다.


거추장스러운 포장을 걷어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알고 그분의 십자가만을 전하는 삶이고 싶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고 전하는 삶이고 싶다. 덕지덕지 붙은 다른 요소들은 오히려 나의 욕망과 두려움 때문에 더해진 것임을 깨닫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알고 그분을 나누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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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고전 1:26-31 _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많은 문제가 비교 의식과 교만에서 기인한다. 성도들의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는 학벌을 자랑하고, 누구는 외모를 자랑한다. 누구는 재력을 자랑하고, 누구는 똑똑함을 자랑한다. 누구는 인맥을 자랑하고, 누구는 신앙이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말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도들의 공동체는 자기 자랑과 교만으로 점철되어서는 안된다. 복음은 인간의 자랑거리나 외적 조건들에 의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이들을 택하셔서 복음을 전하신다. 성도들의 공동체를 세워가신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이것이 성도들이 견지해야 할 자세이다. 그리고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누릴 참된 위로이기도 하다.

비교 의식과 교만, 그리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자기 자랑이 나와 주위에 만연해 있다. 이런 의식은 어떨 때에는 자신감과 우월감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분노와 좌절과 우울함으로 이어지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시기와 질투로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복음은 그 역동성과 신비를 잃고 그저 인간들의 악세서리가 되어 버린다.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려거든 그 무엇으로도 말고,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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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고전 1:10-17 _ 우리를 보내신 이유.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추종자를 모으라고 우리를 보내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오직 그분이 친히 이루신 일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그분을 따르는 이들을 모으라고 우리를 보내신 것이다.(17절 참고) 보냄받은 삶(미션얼 라이프)을 표방하고 소위 사역으로서의 삶을 이야기 할 때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예수 따름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을 따르는 일에 빠지기 쉬운가! 또한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설정한 아젠다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쉬운가!

Posted by 푸른메아리1

#시심QT _ 왕상 11:41-43 _ 죽음을 생각하는 지혜


솔로몬의 죽음에 대한 짧은 기록.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죽음을 생각하며 생의 마지막에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숙고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Posted by 푸른메아리1

#시심QT _ 왕상 11:34-40 _ 하나님의 단일하고 단순하며 확고한 요청, 하나님의 명령과 율례를 따르고 지키는 일


다윗, 솔로몬, 여로보암...

왕들을 세우실 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단 한가지 확고한 요청은 하나님의 명령과 율례를 따라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이었다.

다윗은 비록 간음의 죄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이런 명령을 잘 따른 왕으로 하나님의 기억 속에 새겨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후대 왕들에게 다윗과 같이 행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열왕기상을 묵상하기 시작하고 매일매일 하나님의 동일한 말씀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율례를 따라 합당하게 행하고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실패하기 마련인 내 모습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요청은 분명하다.

그 요청에 순종하는가? 이것이 오늘도 내 삶의 지표가 되어야 하리라.

다시 한번 그분의 도우심을 구한다.

Posted by 푸른메아리1

#시심QT _ 열왕기상 11:9-13 _ 지혜를 소멸시킨 우상숭배


요즘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심상치 않다. 요즘 말로 한번에 훅 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회와 공동체에서 신뢰받고 존경받던 이들에게 일어난 이러한 일들을 듣고 접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와 공동체를 돌아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한번의 실수나 실패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조금씩 쌓여온 문제들을 무시하고 돌이키지 못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솔로몬도 그러했다. 지혜자 솔로몬은 점점 더 많은 존경과 힘을 얻게 되고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교만해졌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의 정신이 자신을 숭배하고 자신의 지혜에 의지하는 자만으로 바뀌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지 않았고 자신이 생각하는데로 행동하였다. 실로 엄청난 수의 부인들과 첩들을 두고 이방 여인들을 이런 식으로 가까이하면서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우상 숭배에서 돌이키라고 경고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은 솔로몬은 결국 나라를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우상 숭배는 지혜를 소멸시켰다. 우상 숭배, 곧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욱 예배하는 일은 사람의 지혜를 마비시킨다. 자신을 숭배하고 돈을 의지하며 인맥을 의지하고 정욕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경고도 무시하게 되는 무감각에 이르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오늘 말씀은 이토록 적나라하게 우상 숭배에 빠져 파멸에 이르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이것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와 공동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칭찬과 주목을 받는 일은 언제나 교만으로 이끄는 유혹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잘 살피고 하나님 안에 거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말씀의 경고 앞에 늘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내 삶에서 말씀이 늘 충만하게 하여야 하겠다. 

Posted by 푸른메아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