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영성, 보냄 받은 공동체 이야기

극동방송 <일상과 문화> 방송자료

 

 

에어컨, 편리함을 유보하는 영성

 

정한신(일상생활사역연구소 기획연구위원)

 

1. 에어컨, 편리함과 그 대가

 

현대 사회에서 여름의 필수품이라면 단연 에어컨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화가 가속화될 수록 자연풍에 의한 냉방과 여름나기가 어려워지고 에어컨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건축되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나 대형빌딩들은 시스템 에어컨을 구비하여 그야말로 에어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어컨이 주는 청량감은 무더운 여름에 그 어떤 것과도 대치할 수 없는 만족을 준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에어컨에서 얻는 유익만큼 우리는 수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작게는 우리의 몸이 더 이상 더위에 싸워 이길 내성을 잃어버렸다.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도 에어컨에 의존하게 되는 현대인의 체질은 분명히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낮은 에어컨 온도에다가 밀폐된 공간에서 에어컨을 장시간 사용하게 됨으로써 오는 냉방병이 현대의 신종 질환으로 등장했다. 거시적으로 보면 에어컨은 전기와 화석 연료 등 지구의 에너지를 고갈하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이고,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인간의 이기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 에어컨, 환경을 바꾸려는 인간의 노력

 

에어컨은 계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쾌적한 환경을 누리기 원한 인간이 그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에게 부여된 창조의 능력은 단순히 원창조세계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연의 원리를 터득하고 자신의 욕망을 반영하여 새로운 환경을 창출해 내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일면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하게만 사용되면 인간의 창조성과 문화적 역량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여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에어컨 덕분에 여름의 열기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사람들, 특히 환자나 노약자들이 여름을 보다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열기와 습기로 인하여 부식되거나 변형될 수 있는 물건들을 보존하기도 하고 생산의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노력이 창조세계의 질서에 따르는 범위 내에서 유효하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거슬러 행하는 인간의 노력은 환경을 파괴하고 결국은 그 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창조세계 안에서 숨쉬는 만물을 파괴한다. 이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3. 눈 앞의 필요를 채우기보다 즐거움과 편리함을 유보하는 삶

 

에어컨을 사용할 때 우리는 눈 앞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더욱 중요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무시할 때가 많다. 당장의 무더위를 씻어버리기 위해 에어컨을 이용하면서 이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덮어버린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들은 당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필요할 때 에어컨을 이용하는 일은 가능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용이 가져올 결과들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는 일은 어리석고도 무책임한 일이다. 우리는 당장의 즐거움과 편리함을 유보하면서 중요한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지키는 지혜로운 삶의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 불편을 감수하는 삶이 책임 있는 삶이며, 우리 이후의 세대에 대해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청지기인 우리에게 지구와 만물을 맡겨주신 주인의 명령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푸른메아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