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영성, 보냄 받은 공동체 이야기

#시심QT _ 행 4:13-22 _ 권력의 협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당당하게 살고 저항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사도들의 입을 막기 위해 당시 유대의 권력자들은 수차례에 걸쳐 협박을 합니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교회 가운데 명백히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으라! 말하지 말라!"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런 권력의 협박 앞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다면서 당당히 맞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에 따라 살아갈 때 권력의 폭압과 회유 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선 교회는 부정의하고 진리를 외면하는 권력을 흔들리게 합니다. 말씀의 반석 위에서 살고 저항하는 교회로 보냄받았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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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행 3:17-26 :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 회개하라!


베드로의 설교가 이어집니다. 그는 생명의 주를 죽인 군중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군중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이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예언의 성취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하나님께서 만물을 회복하시는 기간으로 규정합니다.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은 회개하고 악에서 돌이키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마음의 회심은 물론이요 자신의 악한 행위에서 떠나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따르는 삶으로 나아오라고 베드로는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회복의 여정은 만물의 회복이라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에 동참하여 자연과 문화와 제도 속에 스며든 악을 일소하고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회복의 일을 완수해 가는 사역으로 이어져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 돌이켜 만물을 회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지를 상고해 봅니다. 거룩한 상상력으로 일터와 가정을 회복하여 가고, 문화와 여러 영역에서 행하여야 할 일을 찾아가려 합니다. 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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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행 2:40-47. 성령으로 변화된 공동체는 사회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가 됩니다. 


성령충만해진 사도들, 불과 같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천명의 신도가 회심하는 역사가 본문에서 그려집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태동한 초대 교회 공동체가 회심의 경험을 내적인 변화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자신의 소유를 팔아 다른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공동체적 헌신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함께 축제와 같은 식사를 나누며 서로서로의 필요를 채워준 공동체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게 됩니다. 성령을 통해 나타난 사도들의 이적, 그리고 공동체의 총체적인 변화... 성령으로 변화된 공동체가 한 사회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오늘 말씀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 우리의 공동체는 사회 속에서 어떤 메시지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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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열두 제자를 채움 (행 1:12-26) : 교회의 시작, 그리고 제자됨의 요건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선출하는 제자 공동체와 약속된 성령을 기다리면서 함께 기도하는 120여명의 성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초대 교회의 시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제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라는 묵상이 마음을 채웁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을 통해서 발견한 표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은 끝까지 이 길을 가기로 뜻을 모으고, 온전히 하나가 되어 기도했다."(14절, 메시지 성경)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던 때부터 승천하신 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었고, 우리와 함께 그분의 부활의 증인으로 지목된 사람들"(21-22절, 메시지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교회의 성도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우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가기로 뜻을 모으고, 하나가 되어 기도하는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함께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되고 능력을 입은 성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새 시대의 증인들, 새 나라의 증인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들로 살아내는 이야기들이 사도행전 전체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삶으로 써 내려가야 할 이야기들이 있음을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이 땅을 살면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 말씀을 붙들고 진지하게 찾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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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예수님의 승천 (행 1:1-11) : 성령충만과 보냄받은 삶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 공동체에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승천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증인된 삶을 살라고 당부하십니다. 두렵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제 태동하기 시작한 작은 교회는 성령충만으로 세례를 받고 비로소 증인으로서의 삶, 보냄받은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저와 공동체도 성령충만함으로 보냄받은 일상을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보냄받은 일상에서 이미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일은 일과 가정과 숱한 관계들 속에서, 정치, 경제, 문화의 제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하겠기에 할 일이 참 많아 보입니다. 혼란과 두려움과 슬픔과 무력함 속에서 위축된 마음으로 견뎌내어야 하는 일상이라도 성령충만을 구하며 다시 한번 보냄받은 삶을 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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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시편81편 _ 구원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라!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출애굽, 곧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명절에 찬송과 흥겨운 노래가 넘쳐난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마땅한 것은 그가 구원을 베푸시고 그 백성을 이끌어 내셨으며 고난에서 건져주셨기 때문이다. 이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특정한 절기에만 있어야 할 일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이 되어야 하리라.

한편, 시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을 다시 상기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신 그 말씀,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신 그 말씀,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로 채워주시겠다고 하시고, 그 원수를 대적하여 굴복시켜 주시겠다고 하신 그 말씀...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구원자 하나님은 그 백성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신실하게 따르는 이들에게 모든 풍성한 것들로 채워주시는 분이시지만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이들은 이 모든 복을 놓치고 비참함 가운데 거하게 된다. 내 삶에서 고단함과 목마름과 부족함이 있다면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 때문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겠다. 늘 풍성하게 채워주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마음을 헤아리며 오늘을 살자. 요며칠간 심한 스트레스와 불만족스러움 가운데 힘들었는데 다시 구원하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 일상이 다시 하나님을 찬송하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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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서로 사랑! (요일 3:19-2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자는 진리 안에 거함을 알게 된다. 혹 스스로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담대함을 얻어 기도하고 그 응답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
계속되는 사랑에의 촉구는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살라는 말씀으로 한층 더 강조된다. 서로 사랑하는 성도 안에는 그리스도가 거하고, 성도도 그리스도 안에 속하여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데, 성령님께서 이를 확증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과 사랑하는 일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특히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는 일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본질적인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이런 사랑의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래서 세상이 알 수 없는 참 복음의 즐거움과 놀라운 사랑의 역동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넘쳐나서 그 자체로 예수님께서 공동체 안에서 살아숨쉬고 있음이 증거되는 일이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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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요일 3:11-18_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믿음의 공동체를 향한 사도의 간절한 호소는 사랑하자는 것이다. 이 형제 사랑은 구원받은 이들의 당연한 표지요 영생의 증거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소위 마음 속에 머물러 있는 자기 확신이나 심리적이 위안에 그친다면 그것은 참된 영생이 아니다. 말씀이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처럼 형제를 사랑함으로 영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매우 놀라운 진리다. 형제 사랑은 단순한 교회 생활의 윤리이거나 착한 마음의 발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삶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말씀은 이야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아는 우리는 마땅히 형제를 사랑해야 하고 그 사랑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를 돌아보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소위 교회 생활을 하지만 형제를 돌아보지 않고 돕지도 않으며 오직 나 자신과 내 가정의 안위만 생각하기 쉬운 것이 이 경쟁사회 안에서의 생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내외적 압력이 있다하더라도 십자가를 따르는 삶은 사랑하는 삶이다. 내게 있는 돈과 시간과 재능을 나누어 형제를 돕는 일이 우리네 교회들 안에서 진실로 일어난다면 세상이 놀랄 참된 변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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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영생 = 삼위 하나님 안에 거하는 충만한 삶 (요일 2:24-29)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메시지를 간직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삶에 스며들게 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그 메시지가 여러분 안에 생생히 살아 있으면, 여러분은 아들과 아버지 안에서 충만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 참된 생명입니다!"(요일2:24-25, 메시지 성경)

영생이 오늘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생하게 밝혀주는 말씀이다.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이 삶 속에 스며들게 사는 삶. 삼위 하나님 안에서 생생한 그 말씀으로 사는 삶이 영생이다. 충만한 삶, 충만한 사귐이 영생이다.

영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 안에 거하는 성령께서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거짓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고 행할 수 있다. 그는 온전히 의를 행하는 삶을 산다. 이것이 영생을 사는 사람의 표지요 산 증거이다.

죽음 이후의 소망으로 영생을 한정할 수 없다. 말과 고양된 감정으로 영생을 산다고 할 수 없다. 오직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진리의 말씀 안에서 살며 의를 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오늘 내 삶을 새롭게 정의하게 하는 이 말씀을 붙들자. 그리고 모든 진리를 알게 하시는 성령의 충만을 구하며 삼위 하나님 안에 거하는 참 삶을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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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QT _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17)


세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아보이는 것들로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보내시고 세상 속에서 육신을 지니고 사는 우리가 누릴 좋은 것들을 선물로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좋은 것들이 우리의 전적인 헌신과 하나님보다 더한 사랑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우상이고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자긍심과 편안함과 즉각적인 즐거움을 준다고 약속하면서 쾌락과 소유에 열중하라고 한다. 나 역시 하루에도 몇번씩 세상에 이끌리는 모습이다. 안정과 지위와 명예와 인정의 유혹이 가장 크다.

말씀은 분명히 이야기한다. 세상도, 정욕도, 그 모든 즐거움도 일시적인 것이고 영원하지 않다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남는다고...

이것이 세상을 뒤로 하고 하나님의 뜻을 매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이다. 세상 속에 보냄받은 성도가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감사하며 그 모든 즐거움을 누리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행하는 중심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긴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주여, 세상에 자꾸만 눈이 가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성령 충만케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을 행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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